시암송본부 소식

광주일보 기사(2009년 11월 20일)

日日新 2009. 11. 21. 08:27

 광주 빛고을 건강타운 시 암송반 할머니들

 

 

 

시 한편을 외울 때마다 보석함에 보석을 하나씩 넣어두는 기분이 든다는 시 암송 전도사들. 주옥련·조광숙·조병기·이영란〈사진 왼쪽부터 /위직량기자 jrwi@kwangju.co.kr



“나, 요즘 미쳤어요.”

조병기(77·전 광주YWCA신협 이사장)씨가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상 하는 말이다. 깜짝 놀란 이들이 물어보면 웃으며 대답한다. “나, 진짜 미쳤어요. 시 암송(暗誦)에….”

시암송국민운동본부 문길섭씨가 진행하는 빛고을 건강타운 시암송반에 다니며 ‘시 외우는 재미’에 도취된 이들을 18일 광주 한 카페에서 만났다.

“꽉 막혔던 마음이 청심환을 먹고 확 내려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시 한편 외울 때마다 보석 하나씩을 보석함에 넣어두는 기분이예요” “시를 외우다 보면 마음도 맑아지고 순해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조씨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한 대학 동창생 이영란(61), 조광숙(60), 주옥련(60)씨는 “함께 차 타고 가면서 아름다운 시를 함께 낭송할 때면 정말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고령자인 조씨가 6개월 간 암송한 시는 모두 60여편에 달한다. 전신마취를 세 차례 할 정도로 큰 수술을 하기도 했던 조씨는 솔직히 처음에 시 외우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초반에는 잘 외워지지 않아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시를 접하다 보니 어느새 시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얼마 전부터 하모니카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제 모임 가면 하모니카 연주와 시암송을 들려줄까 해요. 유년시절을 보낸 친구들과 만날 땐 정지용의 ‘향수’가 좋을 듯 하구요. 오랫동안 몸 담았던 YWCA 가족들을 만날 땐 Y가족이기도 했던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많은 사람이 마음을 다잡어야 하는 자리에 갈 때면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들려줘야죠.”

깊은 잠에 들지 못해 뒤척이던 새벽은 이젠 시를 암송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됐고, 항상 시와 함께 하다보니 8년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며 ‘소탈한 논두렁 아저씨’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김용택의 시를 좋아한다는 이영란 씨는 주방 냉장고에 매주 새로운 시를 붙여놓고 설거지 하며, 음식 장만하며 시를 외우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조광숙 씨는 며느리 생일 때 편지와 함께 이해인 수녀의 ‘나를 키우는 말’을 적어 보냈더니 며느리가 감동을 받았다는 말도 전해주었다.

“시를 외우면서 자연을 새롭게 보게 됐어요. 떨어진 낙엽도, 얼굴을 스치는 바람도 다 예전과 다르게 느껴져요. 내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정답고 반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그것도 변한 모습이구요. 무엇보다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제일 행복합니다.(웃음)“(조병기)

시암송반에 열심히 다니는 20여명은 최근 ‘노대골 시사랑회’(가칭)를 만들었다. 이들은 오는 12월 7일 태백산맥 문학관 등 문학 현장을 둘러보는 첫번째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빛고을 건강타운 시암송반은 만 60세 이상이면 등록할 수 있다. 일반인 가운데 시 외우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달에 1편, 50편을 외우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시암송국민운동본부(062-651-4117)로 문의하면 된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