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시사랑
김성우 님
日日新
2009. 10. 7. 20:12
명사들의 시사랑 고백
* 시 한 편을 암기하기란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닌데도 왜 굳이 암송을 강요하는가. 음악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는 독주 때 왜 반드시 악보를 외워 연주하는가. 왜 악보를 들고나와 노래하는 가수는 없는가. 특히 악기 연주자들은 그 긴 곡을 암보로 연주하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한다. 독보와 암보는 음악의 표현력에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곡을 외워야 그 음악이 자기 몸속에 용해되어 체득화(體得化)되고 내면화(internalisation)된다. 이렇게 해서 온몸으로 우러나는 음악이라야 진정한 음악이 되는 것이다.
시낭송도 마찬가지다. 원고의 글자를 따라 시를 읽으면 그 시각의 집중이 내면의 정감을 방해한다. 글자에 얽매여 자신의 감흥이 자유롭게 생성되지도 않고 발산되지도 않는다. 시감(詩感)이 내면화되지 않으므로 충분한 감정이 묻어나기가 어렵다. 그저 글자를 하나하나 발음하는 데 그치게 된다. 발성이 있을 뿐 낭송은 없다. 연설의 경우를 보더라도 원고를 보고 읽는 연설에서 웅변을 기대할 수 없다. 즉흥적 감정 없이는 웅변이 되지 않는다. 시낭송도 암송은 즉흥의 감흥이 작용하는 것이다. (김성우, 전 한국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