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과의 만남

나의 사랑하는 생활

日日新 2009. 3. 23. 20:15
바쁨과 한가로움이 알맞게 교대하는 생활을 나는 사랑한다. 내 스스로 세운 계획으로 말미암아 바쁠 때 그 바쁨은 더욱 보람차고, 가벼운 음악을 듣거나 꽃길 또는 숲속을 거닐 때 그 한가로움은 더욱 쾌적하다.


마음과 몸을 기울여 열중할 수 있는 보람된 일이 있어서 생활의 중심이 잡혔을 때, 나는 내 삶에 뜻이 있다는 것을 은연 중 의식한다. 반드시 거창한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허황된 꿈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분수를 지켜가며 조그만 일이라도 성취하는 것이 상책인 줄 알고 있다. 다만, 같은 값이면 생명이 좀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쯤 해보았으면 하는 욕심도 없지 않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떠들며 마시고 먹는 회합에 대해서는 별로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격의 없는 소수의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훨씬 기쁘고 유쾌하다.


진리가 어떠니 철학이 어떠니 하는 따위의, 유익할지는 모르나 골치아픈 화제는 교실과 연구실에서 다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밖의 자리에서는 가볍고 한가로운 이야기로 긴장을 풀 일이다. 유우머를 이해하는 친구와 독기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것은 다시없는 즐거움이며, 서로의 실패담을 털어놓는 것도 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즐기며 쉬는 시간을 너무 오래 끄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유락과 휴식도 너무 오래 가면 도리어 피곤하다. 흥이 다하기 전에 다시 일에 몰두하고 싶다.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범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