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창작예술촌 1호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3. 5. 31 발간 예정)
순천 창작예술촌 1호
몇 주 전 곽재구 시인의 ‘창작의 집’이라는 순천 창작예술촌 1호를 찾아갔습니다. 이 공간은 순천시가 곽 시인에게 제공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공공기관이 한 시인을 위해 이런 귀한 선물을 해 준 게 무척 좋아보였습니다. 이 공간은 순천문학관(동화작가 정채봉과 소설가 김승옥을 기념하는 곳)과 함께 순천문학의 명소의 하나가 되리라 믿습니다.
창작예술촌은 주변이 한가롭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이곳은 광주에서와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했습니다.
‘정와’(靜窩, 조용한 움집)라는 아담한 건물 1층(‘은하수’라는 이름의 전시 갤러리)에 들어서자 미술사학자로 유명한 이태호 화백의 수묵화와 함께 낯익은 소설가, 시인 몇 분(한승원, 김용택, 정호승, 곽재구 등)의 육필원고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2층은 시인의 작업실이고요.)
안내인이 전화를 하자 산책 중이던 시인이 전시실에 들어섰습니다. 구면인 그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10여 분 사담을 나눴습니다. 그는 광주에서 지낼 때 내 직장 가까운 곳에 살면서 글을 쓰고 몇 권의 중요한 산문집과 시집을 냈습니다. 그후 순천대에서 후학을 지도하다가 은퇴 후 순천에 자리잡고 시를 쓰고 있습니다.
시인은, 한 관람객이 낭송회 등에서 그분의 대표작 ‘사평역에서’가 애송된다고 하자 낭송도 좋지만 한 달에 한 권쯤 시집을 사서 읽는 일도 중요하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시인은 전시도록(2023. 4. 11 ~ 5. 31)에 정성껏 사인을 해서 주었습니다. 이 도록은 순천시의 협찬으로 방문자에게만 한 부씩 준다고 합니다. 시인은 내게, 이런 기획도록만 모아도 좋은 수집이 될 거라 했습니다. 다음은 사인의 내용입니다. “문길섭님 꽃피고 바람부는 철에 은하수에서 뵈어 기쁩니다 2023. 4. 23 곽재구”
시인과 작별 후 도우미(시인의 순천대 제자)에게서 시인의 일상에 대해 들었습니다. 시인은 날마다 이 작업실과 가까운 찻집에서 오전 세 시간 시를 쓰며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점심 후엔 산책을 하면서 스마트폰에 시상을 메모하고 사람도 만나고 책을 읽고 쉬기도 하면서 지낸다고 합니다.
난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그의 단골 찻집에 가서 시인이 늘 마신다는 아메리카노를 시켜 시인이 늘상 앉는 자리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쓴 시 몇 편을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그 중 한 편 ‘나무 – 연화리 시편1’입니다.
“숲 속에는/ 내가 잘 아는/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나무들 만나러/ 날마다 숲속으로 들어갑니다/(중략) 내가 동무 삼은 나무들을 보며/ 그때 당신은 말할 겁니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언어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프랑스 작가 사르트르와 보브와르가 늘 들르곤 했다던 파리의 어느 카페처럼 이곳도 곽 시인 덕분에 오래도록 명소가 되겠지요.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황다연 님의 ‘대숲소리’입니다. 대숲소리에 대한 여러 은유가 정겨운 느낌을 줍니다.
대숲소리/ 황다연
(1945 ~ )
도포 입은 유생들 한자리 모이는 소리/
풀먹인 모시옷 널어서 말리는 소리/
명상의 누각 스치는 하현달 옷자락 소리
(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