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詩 칼럼 (2022. 9. 7 발간 예정)
눈물 한 방울
이어령 교수는 대장암이 발견되어 수술은 했지만 항암은 거부했습니다. 항암에 매이기 보다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죽기를 선택한 것이지요. 이 일로 부인 강인숙 관장과 다투기도 했지만 나중에 부인은 “자신이라도 그런 처지라면 그걸 선택했겠다”는 생각을 하고 남편이 원하는 걸 수용했다고 합니다.
‘눈물 한 방울’은 지난 2월, 88세에 타계한 이어령 교수가 생의 마지막 기간에 남긴 책 중의 하나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2009년 10월부터 영면에 들어가기 한 달 전인 2022년 1월까지 노트에 손수 쓴 마지막 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지요. 이 책에는 시, 산문, 평문 등 다양한 형식의 친필원고, 거기에 그와 어우러지는 저자의 손수 그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무엇인가 생각했는데 결론은 ‘디지로그’ ‘생명 자본’에 이은 ‘눈물 한 방울’이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눈물에 대한 저자의 생각입니다. “무엇으로 짐승과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까? 눈물, 나 아닌 남을 위한 눈물이다. 낙타도 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다. 로봇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의 삶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게 내 인생이다.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다. 품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의 그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이 교수와 같은 창조적인 천재에겐 일반 사람 두 배쯤의 수명이 주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죽음은 예외가 없었고 다음의 고백들이 그도 평범한 다른 이들처럼 죽음 앞에서 외로워하고 무서워하고 더 살고 싶어하기도 한 사람임을 알게 합니다.
“배가 아프다.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열도 난다. 목이 타고 어지럽다.” “아무도 내 아픔을 모른다.” “한밤에 눈뜨고 죽음과 팔뚝 씨름을 한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내 마음은 흔들린다. 살고 싶어서.” “폴리텐트 한 알을 찢어, 틀니를 세척한다.” “내일 아침은 오지 않을 수도 있어. ‘안녕’ ‘잘 자’ 혼자 인사말을 한다.”
“암 선고 받고 난 뒤로 어젯밤에 처음 어머니 영정 앞에서 울었다. 통곡을 했다.” (부인의 증언에 따르면 이 교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와 치매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로잡힐 때도 울었다고 합니다.) “불을 켜 놓고 처음 잠을 잤다. 밤이 무섭다” “지금 나는 배설의 순간을 고도를 기다리듯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 제가 죽음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까닭은 저에게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앞둔 몇 개의 그의 아포리즘도 울림이 큽니다. “나는 어렸을 때 죽음을 알았고 나는 늙었을 때 생(탄생)을 알았다. 거꾸로 산 것이다.” “늙은이가 젊은이에게 해줄 수 있는 단 한 마디. 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늙어서 죽음을 알게 되면 비극이지만 젊어서 그것을 알면 축복인 게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정한재 님의 ‘비가 내리면’입니다. 비 냄새, 흙 냄새, 바람 냄새에 이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좋다고 노래했네요.
비가 내리면/ 정헌재
비가 내리면
비 냄새가 좋고
그 비에 젖은
흙 냄새가 좋고
비를 품은
바람 냄새가 좋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좋고
(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