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오솔길과 시암송
무등일보 격주간지 詩 칼럼 (2016. 1. 22)
마음의 오솔길과 시암송
오래 전에 광주일보 문화부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책을 고를까 생각하다가 충북대 정효구 교수(문학평론가, 서울대 문학박사)가 쓴 ‘시 읽는 기쁨' 1, 2, 3 권이 떠올라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써 보냈습니다.
이 책은 내가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 좋은 시를 고르는 안목을 높여주고 시를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였습니다.
세 권에 걸쳐 시 96편의 해설이 담겨 있는데 시에 대한 유려한 해설뿐만 아니라 해설 사이사이에 시에 관한 별처럼 빛나는 잠언에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그는 우리 시단에 좋은 시가 많고, 자신이 읽은 시를 소개하고 싶은 소망을 가졌다고 하면서 자기 혼자 좋은 시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고백은 나의 마음과도 통한 바 있어 좋았습니다.
그는 오규원의 ‘프란츠 카프카’란 시의 해설에서 법과의 비교를 통해 시의 특성을 인상 깊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법이 사람을 사무적이게 만든다면, 시는 사람을 너그럽게 만든다. 법이 세상을 질서 있게 만든다면 시는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다른 시의 해설에서는 우리에게 여러 형태의 시와 가까워지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시란 인간의 승화된 욕망을 표현하는 양식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시와 친해진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한결 고양(高揚)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양된 영혼을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이 권고를 받아들여 나도 될수록 다양한 시인과 시에 관심을 가져보려고 했습니다.
이선영의 ‘인생’이란 시의 해설에서는 ‘오솔길’이란 시어(詩語)로 내 마음에 오래 간직하고 싶은 조언을 들려줍니다. “자기만의 오솔길을 하나쯤은 마련해야 이 엄청난 대로(大路)의 시대를 견딜 수 있지 않을까요. 오솔길이 소중한 때입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오솔길이든, 마음의 오솔길이든, 인생의 오솔길이든 오솔길이 필요한 때입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혼자 고요히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 하나쯤 공들여 만들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 아름다운 문장을 대하면서 나는 공들여 암송시를 한 편 한 편 쌓아가는 것이 내 마음의 오솔길을 예쁘게 만드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정현종 님의 ‘그 굽은 곡선’입니다. 직선의 시대에 ‘생명‘과’‘평화’가 담긴 곡선의 의미를 음미해보면 좋겠습니다.
그 굽은 곡선/ 정현종 (1939 ~ )
내 그지없이 사랑하느니/ 풀 뜯고 있는 소들/ 풀 뜯고 있는 말들의/ 그 굽은 곡선
생명의 모습/ 그 곡선/ 평화의 노다지/ 그 곡선
왜 그렇게 못견디게 좋을까/ 그 굽은 곡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