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시암송칼럼(2021)

‘언어의 마술사’ 이어령 교수 어록 (1)

日日新 2021. 8. 11. 11:21

무등일보 격주간지 문길섭 시 칼럼 (2021. 8. 4)

올해 초 ‘이어령, 80년 생각’이란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부제(副題)가 말해 주듯 이어령 교수의 ‘창조적 생각’의 탄생을 묻는 100시간 인터뷰의 결과물입니다. 대담은 이 교수의 대학, 대학원의 제자로 ‘주간 조선’, ‘월간 조선‘ 기자를 지내고 지금은 인터뷰 매거진 ‘톱 클래스’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민희 씨입니다. 그동안 이 교수는 회고록을 써보라는 지인들의 권유를 “아무래도 자화자찬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해 왔는데 이 인터뷰집이 그의 회고록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담자는 이 교수가 꺼내기 어려운 것도 독자를 대신해 집요하게 파고들어 이 교수의 속살까지 드러내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우선 우리는 그의 유년 시절의 일화를 통해 이 교수의 잠재력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는 대여섯 살 때 두 살 위의 형을 따라간 서당에서부터 나중 그의 별명이 된 ‘질문 대장’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다음은 훈장님과 아이의 문답 내용입니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느니라.”  “왜 하늘이 검나요? 내가 보기엔 파란데요?” “아, 이놈아, 밤에 보면 하늘이 검잖아.” “그러면 땅도 검어야지 왜 누렇다고 해요? 밤에 보면 다 까만데요?” “이 쥐방울만 한 녀석이 어딜 와서 따져? 옛 선현들이 다 그렇게 말씀하신 걸 가지고.” 이 일로 그는 서당에서 쫓겨납니다.
  
누구나 어릴 때 부모의 영향은 절대적이지요. 다음은 그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열두 살 때 작고)에 대해서 들려 준 얘기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지적 호기심과 어머니의 문학적 감수성을 물려받았어요. (...) 아버지는 호기심이 많은 분이셨어요. 특히 신기술, 신문물에 관심이 많아 새로운 기계를 들여오는 데 돈을 아끼지 않으셨지. 도시에 신기한 기계가 나왔다는 소문이 들리면 부리나케 달려가 사 오곤 하셨지요. (...)
  
우리 어머니는 달랐어. 내가 돌잡이로 책을 집어 든 걸 두고두고 들려주시며 자랑하셨지. 장차 문필가가 될 거라면서 말이야. 자라는 동안에 어머니가 책을 참 많이 읽어주셨어요. ‘너는 어렸을 때 책을 잡은 아이야. 나중에 커서 글 쓰는 사람, 훌륭한 학자가 될 거야’라고 말씀하곤 하셨지.”
  
그의 문학 이력이 궁금했는데 다음의 고백으로 의문이 풀리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엔 시를 썼지. 그런데 친구들이 보고는 ‘야, 이게 무슨 시야. 소설이지’ 하는 거야. 그러면 소설을 써보자 싶어 썼지. 그랬더니 이번에는 ‘야, 이게 무슨 소설이야. 평론이지’하더라고. ‘그러면 비평을 써보자’해서 쓴 것이 ‘이상론(李箱論)’이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더라고. 그래서 평론가가 되겠다고 작심한 거예요.”
  
그는 대학 3학년 때 서울대 문리대 학보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편집장을 맡게 됩니다. 이어 그는 이상에 관한 평론을 쓰면서 천리마를 알아본 백락(伯樂)처럼 세상에 천재 작가 이상을 드러냅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복효근 님의 ‘달팽이’입니다. 달팽이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 현대인에게 일침을 가합니다.

달팽이/ 복효근 (1962 ~  )

얼마나 빠른지
달나라에선 나를 팽이라 부르지

내가 느린 게 아니라
쓸데없이 당신이 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