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시암송칼럼(2020)

경전 암송의 기쁨

日日新 2021. 5. 27. 08:02

20여 년 전,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7개월쯤 무직으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춥고 힘든 날들이었지요. 이때 나를 달래 준 것은 영어성경 암송이었습니다.

 

그후 직장을 갖고부터 시 암송에 빠져 성경과는 멀어지고 자연히 애써 외웠던 구절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 빠져나가듯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다시 해야지하면서도 손을 못 대고 있다가 올초부터 예전처럼 성구들을 외우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져서 그런지 요즘엔 성경 말씀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이 꿀보다 달다고 고백했는데 거기에 가까운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어 암송은 처음엔 힘들어도 나중엔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외우면서 영어의 낯설고 어려운 단어에 부딪칠 때가 있지만, 그런 단어를 기억해내려는 노력이 뇌자극으로 이어져 치매예방이란 긍정적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겠습니다. 중학영어 문법 이해만 남아있다면 누구나 영어 암송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몇 주 전에 여동생이 보내 준 영상에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미국 다이빙 금메달리스트 로라 윌킨슨이 다이빙대에서 도약 직전까지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빌립보서 4장에 나오는 몇구절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I can do all this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내게 힘을 주시는 그분을 통해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수상소감을 대신했습니다. “저에게 능력 주시는 분이 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녀의 말에서 말씀 암송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빈민운동가로 알려진 김진홍 목사는 유신시절 옥살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몸과 마음이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 욥기의 다음 말씀을 만난 후 계속 암송하면서 회복이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성경은 교리적인 면을 떠나 문학적 표현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신구약 66권 중에서 다섯 권(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이 시가서(詩歌書)로 분류됩니다. 최근에 외운 아가서(雅歌書) 210-14절도 참 아름답습니다. “(전략) The fig tree forms its early fruit, the blossoming vines spread their fragrance. Arise, come, my darling, my beautiful one, come with me (후략)”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여기선 기독교의 성경을 예로 들었지만 불교의 불경, 유교의 여러 경전도 마음속에 담아 두고 그 말씀들과 친해진다면 불안한 세상에서 우리 마음을 지켜주는 귀한 보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한 암송구절이 점점 불어나니 기쁨이 생깁니다. 아침을 맞으면 새로 외울 구절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갖게 되어 행복합니다. 노년에 열정을 바칠 가치 있는 대상이 생겨 좋습니다.

 

이번 호 암송 추천시는 이상국 님의 살구꽃입니다. 화자는 붉은 꽃의 원인을 새들에게서 찾고 있네요.

 

살구꽃/ 이상국 (1946 ~ )

 

살구꽃이 피었습니다

서문리 이장네 마당

짚가리에 기대어

피었습니다

지난 겨울

발 시려운 새들이 찾아와

앉았다 간 자리마다

붉은 꽃이 피었습니다.

 

                       무등일보 격주간지 아트플러스에 연재한 칼럼 '문길섭의 행복한 시암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