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新 2021. 4. 29. 19:01

정호승 시인께

안녕하세요? 저는 대여섯 번쯤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여러 편의 시(봄길, 수선화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등)를 즐겁게 암송하는 선생님 시의 애독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래 전 국회의장 공관의 한 행사에 초청 받아 암송하기도 했지요. ‘봄길’은 대구에 사는 제 누나가 아들 결혼식 후 폐백 때 신혼부부에게 덕담 대신 읊어준 시입니다. 그때 시어머니의 암송을 들은 며느리는 아이들 하온, 규하와 함께 시암송을 즐기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엔 초등 1학년 3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의 ‘봄길’ 합송(合誦) 영상을 보내주어 재밌게 감상했습니다. 시 중간쯤의 ‘보라’는 시어를 큰소리로 외치는 모습에서 어린이다운 순수함이 느껴졌습니다. 
  
보름 전엔 이강남 선생님(전 금융인, 화가, 저의 멘토)에게서 선생님의 신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선물 받고 밑줄을 그으며 삼일 만에 읽었습니다. 시의 배경이 되거나 계기가 된 이야기들을 시와 함께 모아 놓으셔서 시 이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진행하는 시모임 암송순서 때 A회원이 이 책을 읽었다면서 첫 번째 시 ‘산산조각’과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 바둑아, 미안하다’를 암송하더군요.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시가 1천편 정도 되고 그중 가장 아끼는 시가 ‘산산조각’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시적 상상력 속에 존재하는 부처님이 하셨다는 말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가 제 마음에도 들어와 힘과 용기를 줍니다. 시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고 시인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써진다는 것도 새롭게 배웠습니다. 잘 알려진 ‘수선화에게’란 시가 수선화를 노래한 것이 아니고 수선화를 은유해서 인간의 외로움을 노래한 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연약한 꽃대 위에 핀 수선화의 연노란 빛을 인간의 외로움의 빛깔로 표현하셨더군요.
  
‘바닥에 대하여’도 요즘처럼 코로나로 고통과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시로 생각됩니다. 선생님은 바닥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바닥은 그냥 딛고 일어나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지요.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한없는 존경심, 정채봉 선생과의 깊은 형제애, 김우종 교수와의 사제의 정(情)도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간암 수술 후 “허명에 쫓기어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잘못이 크다”고 한 정채봉 선생의 고백이 노년을 살아가는 저에게 큰 깨달음을 안겨 줍니다. 병실에서 달리는 전동차의 불빛을 바라보며 전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향한 ‘부러움의 시선’도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선생님이 전해주신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사북 탄광 광부의 소원도 저를 부끄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 글을 읽으면서 시인인 선생님도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얻습니다. 
'별을 바라본다'는 뜻의 첨성(瞻星)이란 아호를 가지신 선생님, 건강히 오래 살면서 더 좋은 시와 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이도윤 님의 ‘등’입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을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등’이 ‘외로움’이라는 은유도 아름다운 발견입니다.




이도윤 (1957 ~  )

새끼들이 모두 떠난
사람의 쭈그러진 늙은 등은 허전하여 
바라볼수록 눈물이 난다
위대하여라 등이여
이 땅의 모든 새끼들을 업어낸 외로움이여

 

              무등일보 격주간지 아트플러스에 연재한 칼럼 '문길섭의 행복한 시암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