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다녀오마"
“아빠 다녀오마!”
오래 전에, 광주에서 활동 중인 W화백의 소개로 경북예총 주최 영남예술아카데미 회원을 위한 시 강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영남 지역의 강의는 처음이고 안동에 있는 이육사문학관 관람에 대한 기대도 있어 반가웠습니다. 여행길은 혼자였지만 시를 암송하며 운전하니 심심하거나 외롭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안동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강의장인 상지가톨릭대학 성당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엔 회원 30여 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왜관 베네딕도수도원 피정 참여 예정인 L선생님도 오셔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첫 시간은 ‘시는 내 좋은 친구’, 둘째 시간은 ‘시와 시암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PPT를 활용해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마무리 시간엔 시를 사랑하시는 L선생님께 몇 말씀 부탁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모임에서 시암송을 하던 때의 놀라운 반응을 소개하면서 시암송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말씀 끝엔 정호승의 ‘봄길’을 외우셔서 청중의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점심 후 L선생님과 함께 그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이육사 문학관을 향해 달렸습니다. 시내를 벗어나고 부터 곡선의 시골길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문학관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이 보였습니다. 넓은 들과 안동호가 있는 주변 풍광이 무척 좋았습니다. 몇 년 전 리모델링을 마쳤다는 문학관은 공간미학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전시물을 보면서 단편적으로 알았던 시인에 대해 더 깊이, 상세히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퇴계 이황의 14대손, ‘원록’이라는 실명 대신 첫 수감 시 수인번호였던 264를 따서 아호를 육사(陸史)로 한 것, 일제 강점 시 열일곱 번의 투옥. 그가 쓴 96편의 글 중 현대시는 36편(대표작은 청포도, 광야, 절정), 시인 형제들의 효행, 동서양을 넘나든 다방면의 독서 편력도 감동을 주었습니다.
관람후 관내 카페에 들렀습니다. 그때 카페 한 구석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시다가 우리 쪽을 향해 미소를 보내주셨습니다. 언젠가 영상에서 뵌 낯익은 얼굴이었습니다. 다가가서 시인의 따님이시냐고 여쭸더니 환히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이곳에서 뜻밖에 시인의 혈육을 만나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우리는 자리를 함께 하고 담소를 나눴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얘기해 주셔서 시인에 대해 더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시인 아버지가 지어주셨다는 옥비(沃非). 기름질 옥, 아닐 비. 욕심없이 남을 배려하는 간디 같은 사람이 되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청량리역에서 포승줄에 묶이고 밀짚으로 된 용수를 쓰고 베이징 감옥으로 이송되기 전 아버지는 네 살 된 어린 딸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겼다고 합니다. “아버지 다녀오마!”
팔순이 된 지금, 따님은 교회나 문화교실 등에서 꽃꽂이 강의로 자원봉사를 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동행한 L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깊이 공감하면서 문학관 문을 나섰습니다. “여사의 내면의 고운빛은 꽃꽂이 봉사에서 비롯된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천양희 님의 ‘벌새가 사는 법’입니다. 시 쓰기의 치열함을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벌새가 사는 법
천양희 (1942 ~ )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