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과의 만남
안도현, 시인
日日新
2013. 4. 16. 19:26
한 번은 책꽂이에 꽂여 있는 책 한 권을 빼보려고 하다가 무척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책을 정리할 때 어찌나 빼곡하게, 어찌나 빡빡하게 책을 꽂아 두었던지 영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손가락 끝이 벌겋게 부풀어오를 정도로 손이 아팠지만 책은 좀처럼 빠져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좁은 방, 좁은 책꽂이에 한 권이라도 더 많이 책을 꽂아 보려는 내 과한 욕심 탓이었다.
그때 문득, 나도 빡빡한 책꽂이에서 빠지지 않는 한 권의 책처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마를 치고 갔다. 그래, 나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도 가도 못한 채 지금 그렇게 끼여 있는 것이었다. 아니면 약간의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고, 헐거운 틈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아등바등 만원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여기까지 달려온, 아직도 철들지 못한 까까머리 통학생이거나. (안도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