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新 2013. 4. 4. 17:02

 

시는 ‘사이’에서 성립하는 장르다. 시는 원래 촘촘한 글이 아니다. 시적 언어의 핵심은 압축이 아니라 비약에 있다. 시적 언어는 많은 말을 하나의 전언(傳言)에 우겨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시적 언어는 하나의 말과 거기에 이어져야 할 다른 말을 묵언으로 연관지을 때 생겨 난다.

 

묵언, 곧 영도(zero degree)의 언어가 한 상상을 다른 상상으로 건너뛰게 해준다. 진공 속에서 어떤 도움닫기 현상이 일어난다. 한 세상을 단번에 차고 오르는 탄력이, 한 삶을 단번에 움켜쥐는 악력(握力)이 그 안에 들었다. 그래서 사이는 꿈꾸기의 방식이기도 하다. (권혁웅,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