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송칼럼(2008-14)

암송 시구의 선용

日日新 2008. 12. 9. 10:37
 

시를 많이 외워두면 어느 상황에서 적절하게 꺼내 사용할 수가 있다. 종종 이런 경험을 가질 때마다 시외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광주 충장로에 '베토벤'이라는 클래식 음악카페가 있다.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도 몇 번 다녀가셨다는 곳이다. 오래 전에 문을 연 후 클래식팬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곳인데  요즘은 찾아오는 사람이 적어 운영이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어느 날 '베토벤'에 가서 차를 마시다가 정진규의 시'옛날 국수가게'가 떠올랐다. 그 시의 한 구절,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를 적어 이 카페를 운영하는 자매에게 드렸다. 그 자매는 이 구절을 받고 무척 기뻐했다. "벽에 붙여놓고 싶다"고 했다.

 

내겐 광주에서 낯선 대구로 시집가서 살고 있는 누나가 있다. 나의 프랑스 유학의 길을 열어주고 그 후로도 늘 마음을 써주는 고마운 분이다.  어느 날 김현승의 시 '지평선'을 외우다가 불현듯 그 시의 한 구절을 누나에게 보내고 싶었다. 휴대폰에 시구를 적었다. ' 한 세상 만나던 괴롬과 슬픔도/  그 끝에선 하나로 그리움이 되고'. 나중에 누나가 고백했다. "이 시구가 너무 위로가 되더라. 시가 이렇게 큰 힘이 된다는 걸 몰랐어." 외운 시구가 누군가에게 기쁨과 위로와 힘을 주는 좋은 선물이 될 줄이야! 시암송의 보람이 크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