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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의 생각
日日新
2009. 2. 6. 20:03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1991년)
* 류시화 /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1980-1982년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등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