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시인
우리 동네에 작은 반찬가게가 하나 있다. 동네 길목 여기저기 너덧 개였던 반찬가게가 인근에 대형할인점이 생기면서 그 중 하나만 남았다. 장사가 신통찮을 것인데도 그 집 아주머니의 일과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 늘 좁은 가게 한 귀퉁이에서 반찬거리를 다듬고 있다. 기껏해야 천원짜리 한두 장 들고 두부나 콩나물 같은 걸 사러 가는 나에게도 꼭 두 손으로 물건을 건네고 잔돈을 내어주며 고맙다고 허리를 숙여 인사 한다.
가끔 대형할인점에서 한 보따리 먹을 걸 사가지고 올 때마다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무슨 큰 죄를 지은 기분이 든다. 고개를 숙이고 바삐 가게 앞을 지나치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나는 그 아주머니야말로 천상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대형할인점과 자신의 처지를 견주지 않고 감사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어쩌다 필요해서 대형할인점에 가는 사람들을 탓하지 않고 웃으며 봐주는 것, 다른 장사에 비해 돈이 되지 않는다고 서둘러 가게를 때려치우지 않는 그 아주머니가 정말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아주머니가 손수 키우고 다듬은 콩나물과 푸성귀들을 사러 갈 때마다 나 역시 저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재미나고 달콤한 것에 정신이 나간 사람들을 탓하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얼마나 인생이 부질없으면 저럴까 긍휼히 여기지도 않고, 그들이 돌아올 날을 마냥 기다리는 것, 그들이 돌아와 앉을 빈자리를 닦고 또 닦아두는 일. 그렇게 가끔 찾아오는 시의 손님들을 기다리며 정갈한 손작업을 멈추지 않는 수공업자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최영철, 시인)